AI 시대, 인간의 일자리가 정말 사라지고 있는가?
두려움을 자극하는 소식들
ChatGPT가 전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 시작한 2023년 초, ‘AI가 인간을 다 대체해버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함이 소셜 미디어에서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 트윗이 여러 차례 인용됐던 게 기억나서 찾아보니 현 시점에는 500만 조회수가 넘었군요.
AI가 당신을 대체하는 게 아니다. AI를 사용하는 인간이 당신을 대체할 것이다.

나를 대체하는 게 AI든 AI를 사용하는 인간이든 간에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수시로 해고 뉴스가 들려오고, ChatGPT 이후 신규채용은 줄어드는 동시에 S&P 500 지수는 고공행진했다는 트윗이 크게 바이럴되었습니다. 한국의 몇몇 소셜 미디어 게시물은 이 트윗의 이미지를 인용하며 ‘AI의 인력 대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뉴스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진실 함유량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요?
의심하기
저는 오래 전부터 단정적인 문장, 일반화된 명제, 그럴싸한 주장 등에 대해 일단 의심하고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를 ‘단정 알러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게 "출처가 어디냐, 누가 어떻게 수집한 데이터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지는 증상이죠. 이런 이야기를 글로 볼 때는 나름 잘 참을 수 있는데 말로 들었을 때는 입이 너무나 근질근질해집니다. (관련글: 그건 니 생각이고 (feat. 장기하와 얼굴들))
AI의 인력 대체를 단정짓는 글들을 봤을 때도 이 알러지가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우선 그래프에 찍힌 데이터가 정말인지 확인하고, 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싶었어요. 이미지에 있던 ‘Job Openings Total Nonfarm Bureau of Labour Statistics’라는 문장으로 구글링하니 FRED(Federal Reserve Economic Data, 미 연방준비은행 경제 데이터베이스)에서 수집한 미국 노동통계국의 통계 데이터 페이지가 나왔습니다.

찬찬히 해당 페이지를 읽어보며 몇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 일단 그래프 자체에 찍힌 데이터는 허구가 아니다.
- 한국의 소셜 미디어 게시글에서는 ‘전 세계적인 고용 침체’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미국 내 기업의 비농업(Nonfarm) 직군 구인공고 중, 직전달 마지막 영업일 기준으로 채워지지 않은 공고 수’였다. 즉 전 세계적인 변화도 아니고, 전 직군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당장 채용을 하지 않는 1-2인 규모 창업 또한 반영되지 않는다.
- 이 숫자는 기업의 채용이 완료되거나, 구인공고가 삭제되면 줄어든다. 따라서 최소한 ‘실업자 통계’와 함께 봐야 좀 더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 회색 영역은 21세기 미국에 있었던 3차례 공황(닷컴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코로나)을 나타낸다. 다른 공황들만큼이나 2022년부터의 구인공고 감소 폭이 큰데 이 시기는 ‘공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일까? 이 또한 실업자 통계와 함께 봐야 이해할 수 있겠다.
마침 FRED에서는 실업자 통계도 제공하고, 이를 한 그래프에서 보는 것도 가능하더군요.

위 그래프를 보면 2022년 말부터 실업자 수가 조금씩 올라오고는 있지만, 뉴스나 SNS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심각한 수준인가? 에는 물음표가 남습니다. 좀 더 제대로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호기심을 가지기
제가 가진 또 하나의 습관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고 여기고,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보는 것입니다. 요즘은 ChatGPT, Claude, Gemini 등에서 제공하는 딥 리서치 기능이 워낙 좋아서, 비교적 간단한 질의만으로도 괜찮은 자료 출처들을 빠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시도해봤습니다.
ChatGPT 릴리즈 이후 인간이 AI로 인해 직업을 잃고 있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 주장의 신뢰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최근 연구들을 찾아줘.
딥 리서치 리포트를 읽다 보니 예일대에서 2025년 10월에 발표한 연구(Evaluating the Impact of AI on the Labor Market: Current State of Affairs)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 연구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2022년 11월 이후 33개월간, 즉 생성형 AI로 인한 미국 노동시장 변화가 컴퓨터/인터넷 등 과거 기술 혁신 시기의 변화보다 더 급격하다는 증거가 있나?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직업 구성 분포(Occupational Mix)’, 즉 전체 노동자 중 개발자가 몇%, 사무직은 몇%… 같은 통계가 얼마나 변했나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AI로 인해 사람들이 기존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직무를 찾아야만 했다면 이 분포가 크게 바뀔 거라고 가정한 것이죠.

이 그래프는 AI가 ‘인간이 다른 직무를 찾게 만드는 영향력’을 컴퓨터/인터넷 대비 더 강하게 발휘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을 나타냅니다. 컴퓨터/인터넷 도입 초기와 직업 구성 변화의 폭이 크게 다르지 않을 뿐더러(Figure 1), 그 변화조차 ChatGPT 출시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라서(Figure 2) ‘AI 때문에’ 생긴 변화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를 하나만 더 가져와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실업 기간이 긴 사람들의 AI 노출도(특정 업무의 수행 시간을 AI로 최소 50% 이상 단축할 수 있음)가 특별히 높았나? 즉, AI가 직무를 대체했기 때문에 실업하는 사람이 늘고 있나?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그래프를 보면, 실업자들의 실업 기간과 그들의 AI 노출도 사이에는 명확한 추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무에서 더 오랫동안 실업 상태에 있는 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https://budgetlab.yale.edu/research/evaluating-impact-ai-labor-market-current-state-affairs
이 링크에 있는 주요 용어와 각 그래프의 의미, 주장하는 바를 한글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줘.”
Claude의 응답이 궁금하신 분은 이 링크를 참조하시길!
맺으며
의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직접 두 자료를 찾아 읽으며, 저는 소셜 미디어에 떠도는 주장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사실과 다르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AI가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판단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 입니다. 그래서 지나친 호들갑에 현혹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주변 분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로 충분할까요? ‘AI의 인력 대체’가 아직까지는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건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비롯해 제가 개발자로서 지난 1-2년 사이 체감한 바로는 뭔가 큰 게 오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합니다. 이 괴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개발자들은, 개발자들이 하는 일은 어떻게 될까요?
과거와 현재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쉬우나, 미래를 예측하는 건 무척 어렵습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풀어보겠습니다.
Member discu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