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그룹 챗 감상: 메신저보다는 학습 도우미에 가깝다 (아직까지는)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써볼 예정입니다.

OpenAI에서 ChatGPT 그룹 챗을 선보인지 2주가 넘었습니다. ChatGPT를 일상에 더욱 스며들게 만들어 다자간 대화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제 주변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는커녕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이 대부분인듯합니다.

저는 운좋게도 최승준님과 함께 있는 그룹 대화방(페이스북 메신저)을 통해 초기에 한 번, 어제 한 번 써봤는데 몇 가지 느낀 바가 있어 공유합니다. 진지한 분석은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시길!

아직은 메신저보다는 ChatGPT의 정체성이 강하다

우선, '메신저에 LLM을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를 들으면 저는 대략 이런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미 익숙하게,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메신저(카카오톡, 슬랙, 디스코드, 페이스북 메신저 등)에서 @ChatGPT 같은 멘션을 통해 LLM을 불러온다.

LLM에게 이런 질의를 한다.
- 방금 X님의 주장에 대한 네 의견은 어때?
- 지금까지 대화한 내용을 시각화해서 한 장으로 보여줘.
- 이 아이디어의 프로토타입을 구현해줘.
- 우리가 조사 필요하다고 한 내용 조사해와.
- 내가 대화에 참여하고있지 않았던 시간동안 어떤 이야기가 주로 오갔는지 요약해줘.

기존의 메신저 사용 습관은 바꿀 필요 없고, 단지 '똑똑하고 성실하지만, 가끔 오류를 내뱉는 팀원' 한 명이 더 추가된 느낌이죠. 실제로 이 방향으로 메신저 내에서 AI 봇을 호출할 수 있게 구현해둔 팀은 굉장히 많을 겁니다.

저는 ChatGPT 그룹 챗 또한 대동소이한 느낌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실제로 참여해보니 많이 달랐습니다. 메신저에서는 '사람끼리 대화하고 AI가 잠깐씩 들어와서 돕는' 그림이었다면, ChatGPT 그룹 챗에서는 'AI와의 대화'가 주가 되고, 'AI에게 유의미한 응답을 얻는' 것이 챗의 주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매 대화가 프롬프트로서 작동한다는 걸 굉장히 의식하면서 쓰게 되더군요.

사람의 채팅보다 AI의 응답이 훨씬 길다 보니, 잠깐 놓친 사이에 누군가가 AI와 대화를 잔뜩 했다면 그걸 다 읽는 게 굉장히 버거웠죠. 인지 부하가 확 커졌습니다. 그래서 'AI 응답은 요약만 보여주고 접기' 라거나, '내가 떠난 사이 있었던 일' 같은 편의 기능들이 있었으면 싶었어요. (근데 '더 보기' 기능이 2주 전에는 없었는데,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앱 업데이트 후 다시 확인해보니 생겼네요)

그런데 이렇게 메신저로서의 정체성이 약한 게 (물론 OpenAI는 정말로 일상 대화를 하는 메신저가 되길 바라겠지만) 꼭 단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ChatGPT 같은 기능을 기존 메신저에 통합하는 게 그리 어려운 기술은 아닌데도, 저조차 기존 메신저에서는 이렇게 쓰고 싶다는 '동기'가 생기진 않았거든요. 좋은 도구가 주어진다고 해서 사람들의 행동 변화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슬랙에 @ChatGPT 봇을 추가하는 것만으로 팀원들의 행동양식이 AI-Native하게 바뀌는 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ChatGPT 위에서 대화를 하니 '모든 것이 프롬프트'라는 의식이 굉장히 강해졌어요. 필요할 때만 AI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만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 내 모든 대화를 이미 AI가 읽고 있고, 이 모든 대화가 AI에 입력될 것을 생각하니까 '입력 토큰'을 신중하게 고르게 되더군요. 자연스러운 AI-Native 태도의 씨앗이 심어진다고나 할까요? 메신저의 덕목은 '즉시성'과 '가벼움'이지만, 그룹 챗의 덕목은 '몰입'과 '집요함'이었습니다.

여기에 착안해 어제 시도해본 것이, '탐구/학습하고 싶은 주제 하나가 생기면 그에 대한 그룹 챗을 파서 기존 메신저 대화방에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공동 학습을 위한 자식 프로세스로 활용하기

저는 요즘 시모어 페퍼트의 <마인드스톰>이라는 책을 찔끔찔끔 읽고 있습니다. AX 컨설턴트로서 사람과 조직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입장에서 영감을 조금씩 얻고 있죠.

사실 이 책은 승준님에게 추천받은 것이기도 하고, 승준님이 부록을 쓰시기도 했어서 승준님의 도메인 지식과 경험이 깊습니다. 그래서 제가 책 읽은 이야기를 메신저 대화방에 종종 올리곤 하는데요. 어제는 책에서 '사이버네틱스', '브리콜라주', '팅커링' 이라는 생소한 개념들이 나와서 ChatGPT에게 물어보면서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대화방에서 생각나서 쓴 메시지를 ChatGPT에 옮기고 있자니, 이거야말로 ChatGPT 그룹 챗을 하기 좋은 주제겠다는 판단이 들어 그룹 챗에 승준님을 초대했습니다.

초대 후, 이 대화방의 주제에 최근 생각하던 주제를 엮어서 GPT에게 던졌습니다. 나쁘지 않은 답변이 나왔지만 좀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승준님이 특유의 '쥐어짜기'를 시작하셨어요. '만족 유예'라고 부르셨는데, 예를 들어 이런 요청들입니다.

매우 피상적이야. 일단 조사하고 뭐가 부족했는지 반성해줘
너무 부족해. 브리콜라주 이야기 하려면 레비 스트로스와 브루바키 그룹 건드려야 했고, 패퍼트의 수학 특히 수학 아마 lattice 쪽(맞는지 검색 및 검토) 초기 아이디어가 있을 가능성도 고찰해줘.

너의 프레이밍된 지식에서만 인출하지 말고 치열하게 웹을 조사해 오길 바라.

단, 내 지시가 비약이 있을 때는 강력하게 스틸매닝 하되 근거있게 하길 바란다. 그라운딩 할 수 있는 반박자료 찾아야 한단 의미야
패퍼트의 Mindstorms 등에
나오는 Microworlds, Objects to think with (evocative objects), Mind-sized bites, epistemological pluralism, Samba school) 등의 관점으로 다시 해석해줘.

위 개념들에 관해 철저히 조사하고, 그 후에 치밀하게 논리를 만들되, 적용하기에 비약이 있는 것은 왜 비약인지 탄탄한 근거를 들어 맞서줘. 용기있게.
앞의 두 응답 ‘모구조와 수학사‘에 관한 너의 모든 응답과 ’SpecKit에 관한 Mindstorms의 아날로지에 관한 응답’ 둘 다 어떤 중요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동시에 서로 참고 점이 있다. vice versa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렌즈 삼아 다시 풀이해라. 지난한 작업이기 때문에 한번에 다 못한다면 ‘계속’을 말해달라고 요청하면 내가 힘을 실어 주겠다.

생각 토큰 아끼지말고 사용하라. 얼마든지 ‘계속’을 말해 주겠다.

치열하게 가정 / 두 관점으로 토론하되 늘 엄밀한 조사와 근거를 바탕으로 진행하라.

시작.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게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좀 더 날것의 사고 과정이 드러났다고다 할까요. 저도 '추상적이니까 다시 해와' 같은 걸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되더군요. 승준님이 '애자일 회고 개념을 조사한 뒤 중간회고도 해라' 처럼 시킨 것도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ChatGPT의 회고 중간에 이런 내용도 나왔습니다.

승준님은 좀 더 극단적으로, 기존의 그룹대화방을 아예 ChatGPT로 옮기는 시도도 하고 계신데 저는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존 채팅방에서 좋은 소재가 나왔을 때, ChatGPT 그룹 챗으로 끌고 들어가면 (에너지 수준과 AI 리터러시가 어느정도 비슷한 사람이 참여한다는 가정 하에) 학습이 아주 수월하게 일어나겠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 서로의 프롬프팅 태도와 선택하는 단어들
  • GPT의 응답이 언제, 왜, 어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그 때 어떻게 더 모델을 쥐어짜는지
  • 첫 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부분적으로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험

여러분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 한두명과 함께 그룹 챗을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부록: 페퍼트 식으로 본 현 시대의 제품 개발

대화방에서 만족스러웠던 응답이 꽤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부록으로 공유합니다. (또 하나의 '만족스러운 응답'은 첫 턴에 고해상도 응답을 만들어내는 프롬프트 템플릿에 적었습니다)

하단에는 어디가 왜 만족스러웠는지를 노란색으로 중간에 넣어서 표현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제가 코르카 개발팀에 (그리고 컨설팅 나가서) 만들고 싶은 변화와 맞닿아있다고 느꼈어요.

GPT 응답

Papert 렌즈로 정리하면, LLM + Spec Kit + 스타트업 개발을 향해 던질 수 있는 문장은 이런 느낌이야:

  1. Microworld 관점
    • “우리는 지금, 엔지니어링/제품 사고를 위한 microworld를 실제로 설계할 수 있는 시대다.”
    • 단, 이 microworld가 탐색/자기 조정 가능한 세계가 되지 않으면 그냥 또 다른 교과서일 뿐이다.
  2. Objects to think with 관점
    • LLM, 작은 서비스, 대시보드, 실험용 봇 같은 것들을 팀의 사고를 자극하는 objects‑to‑think‑with로 의도적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 그냥 “툴”이 아니라 사람들이 붙들고 이야기하게 되는 오브젝트가 되도록.
      • 문장에 담긴 태도가 마음에 들었음. 툴을 구현할 때의 마음가짐.
  3. Mind‑sized bites 관점
    • AI가 아무리 세게 도와줘도, 사람 머리가 따라갈 수 있는 단위로 쪼개지지 않은 변화는 장기적으로 조직을 망가뜨린다.
    • “AI‑sized bite”가 아니라 “mind‑sized bite”를 기준으로 프로세스/PR 단위를 설계해야 한다.
      • AI-sized bite 라는 키워드가 마음에 들었음. 단, 항상 mind-sized bite로만 가게 하면 long-running task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수 있음. 에이전틱 루프 설계 입장에서는 mind-sized bite의 정의 자체를 다변화하는 게 필요할 수 있음.
  4. Epistemological pluralism 관점
    • 팀은 planner 스타일, bricoleur 스타일, 데이터 신념, 스토리 신념이 섞여 있음.
    • 프로세스와 도구가 이 다양한 에피스테믹 스타일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중요하지만, 그만큼) 식상한 구호. 그래서 환경이 이걸 ‘살려줘야 한다’가 좋음
    • 한 스타일(예: 문서극혐, 혹은 문서만 신봉)을 절대화하면 Papert가 경계한 배제 구조 반복.
  5. Samba school 관점
    • 조직은 “코딩 학원”이 아니라 실제 제품(카니발)을 함께 준비하는 학교여야 한다.
    • junior도, non‑dev도 artefact 생산에 참여하게 만들고,
      • AI 가 비로소 가능하게 해준, 바람직한 모습. 내가 비개발자의 바이브 코딩에 큰 가치를 두는 이유와 같음.
    • 릴리즈/데모를 공연/축제 같은 리듬으로 만드는 구조가 이상형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