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구역의 담배꽁초로 보는 행동 변화의 어려움
지난 몇 달간 코르카 삼성역 사무실로 출근할 때마다 작은 모순을 느꼈습니다. 금연 구역 표시 2개 사이에 위치한, ('강남구' 마크가 달린) 담배꽁초 쓰레기통과 그 아래 수북이 떨어진 꽁초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담배를 피워도 되는 곳일까요 아닐까요? 일단은 후자로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점심시간에 그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이런 모순적 상황을 목격했을 때 가장 쉬운 선택은 행위자 개인, 또는 그들이 속한 집단에 대한 비난입니다. 저 또한 예전에는 '저 큰 표지판이 안 보일리는 없는데 왜 굳이 여기서 담배를 피울까? 참 이해 못할 행동이다' 처럼 생각하곤 했죠. 그 다음은 표지판을 눈에 더 잘 띄게 한다거나, 위반시 처벌 정도를 높인다거나, 감시 체계를 강화한다거나... 같은 선택지가 등장합니다.
이런 방법들도 물론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요즘은 이게 정말 최선일까? 같은 생각을 종종 합니다. 위반행위자들이 비난받는다는 걸 몰라서, 표지판이 눈에 안 띄어서, 처벌이 두렵지 않아서, 또는 악의를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금연 표시나 쓰레기 투기 금지 표시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두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이를 통해 행동을 바꾸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결과(깨끗한 공간)가 생기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했듯 표지판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오히려 음의 효과(금연 구역에 담배꽁초가 더 많음)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정책과 의사결정 아래에 있는 가설들에 의문을 제기해봐야겠죠.
- 표지판을 잘 보이게 두면 인식할 것이다 → 잘 보이게 둬도 인식하지 못했다면 이유가 뭘까?
- 표지판을 인식하면 행동이 바뀔 것이다 → 인식해도 행동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유가 뭘까?
관측은 인식을 보장하지 않는다
잘 보이는 표지판을 사실은 보지 못했다면 이유가 뭘까요?
딸아이가 요즘 재밌게 읽는 <마법천자문> 52권에 심부재언心不在焉 시이불견視而不見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증자의 <대학>에 나오는 표현으로, 직역하자면 마음에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시야에 있더라도 인식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

공지사항을 제대로 읽지 않고 딴소리를 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금연 구역의 표지판, 쓰레기 투기 금지 표시, 주차 금지 표시 등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습니다. 삼성역 사무실 앞처럼 강력한 반대 신호들(꽁초 쓰레기통, 바닥의 꽁초들, 담배를 피우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더욱 그렇겠죠.
인식은 행동 변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인식해도 행동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유가 뭘까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제가 이러한 표지판이 생기는 메커니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간단하게 찾아봤습니다.
금연 구역에 왜 담배꽁초가 많을까.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금연 표지판을 더 눈에 띄게 만드는게 최선인가? 혹시 선후가 거꾸로 아닐까? 사실 어디든 흡연을 하면 안 되는데(화이트리스트 방식 - 흡연구역에서만 흡연 가능) 사람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니까 거기에 금연 표시를 하는? (이미 습관화가 됨)
이런 요지의 글을 쓰고 있어.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금연, 쓰레기 투기 금지, 주차 금지 구역 표지판이 어디에 생기게 되는지를 어떻게 결정하는지가 궁금해졌어. 관련된 자료나 연구가 있으면 찾아줘.
Gemini의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딥 리서치 리포트 링크)
- 한국에서 금연·주차·투기 금지 구역은 법정 의무 지정(국민건강증진법, 도로교통법 등에 기반) 구역과 지자체 조례 지정(민원에 기반) 등으로 정해짐. 내가 언급한 건 후자.
- 흡연 습관이 형성된 지역에 민원이 다량 발생하면, 구청 공무원이 예산 한계와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가장 비용이 저렴하고 즉각적인 조치인 '표지판 부착'을 시행.
- 이미 흡연 장소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표지판은 그저 배경이 될 뿐, 행동을 제어하지 못함.
즉 이미 '습관화'된 행동이라면, 표어나 표지판 설치는 시행하기는 쉬우나 효과성은 적은 액션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공공데이터 포털을 보면 강남구의 흡연 민원 건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핵심은 환경 설계에 있다
Gemini는 이러한 제언으로 리포트를 마칩니다.
따라서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최선책은 표지판을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다층적인 접근을 제안한다.
1. **사후적 금지에서 사전적 관리로:** 민원이 들어오면 표지판을 붙이는 수동적 행정에서 벗어나, 빅데이터(유동 인구, 민원 핫스팟) 분석을 통해 선제적으로 흡연 구역과 금연 구역을 구획하는 도시 계획적 접근이 필요하다.
2. **금지의 언어에서 유도의 언어로:** 넛지형 쓰레기통이나 합법적 흡연 구역을 안내하는 스마트 표지판을 도입하여, 흡연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3. **물리적 환경 개선의 병행:** 표지판 설치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구역의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청소 관리이다. 담배꽁초가 없는 깨끗한 바닥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금연 표지판'이다.
4. **현실적인 흡연권 보장:** 무조건적인 금지(Whitelist)는 필연적으로 음성적인 확산을 낳는다. 서울시의 개방형 흡연 부스와 같이, 비흡연자의 건강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흡연자의 행동을 수용하는 인프라 확충이 병행되어야만 '길거리 무단 흡연'을 근절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금연 구역의 담배꽁초 문제는 '시각(Vision)'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Space)'과 '심리(Psychology)'의 문제이다. 행정의 역할은 더 많은 표지판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을 설계(Design)하는 것으로 진화해야 한다.
물론 현실의 문제는 리포트처럼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리포트를 읽으며 확실히 얻은 게 있어요. 디버깅을 하든, 프롬프트를 작성하든, 혹은 조직의 변화를 이끄는 AX 컨설턴트로서 일하든, "자주 일어나는 실수를(또는 습관화된 과거 행동을) 금지하는 대신 바람직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려면 환경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를 '변화를 만드는 핵심 질문'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LLM에 비유하자면 금연 표지판은 "담배 피우지 마"라는 단순한 텍스트 지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모델, 그리고 사람은 텍스트보다 데이터(환경과 습관)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따라서 말로만 금지하기보다 '깨끗한 거리'라는 퓨샷 예제를 보여주거나, '흡연 부스'라는 아키텍처 자체를 조정하는 것이 훨씬 강력한 해결책이 됩니다.
이는 프롬프트에 금지어를 나열하는 것보다 코드로 제약을 거는(pre-push hook, claude code hook 등) 구조가 낫다는 제 경험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결국 AI에게도, 사람에게도 필요한 건 '하지 말라는 잔소리'가 아니라 '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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