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짜증내지 말기'를 훈련하는 이유
얼마 전부터 아내와 함께 연습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짜증날때 짜증내지 말기'인데요. 잠깐 멈추고, 목소리 크기를 낮추고, 상대방이 그냥 알아주길 바라기보다는 본인의 현재 상황과 감정, 요구사항을 명확히 말하는 훈련입니다. '비폭력 대화'의 인포멀한 버전과도 유사해요. "당신이 OO해서 (사실), 나는 OO라고 느꼈다 (감정). OO 해줄 수 있을까? (요청)"
짜증나다, 짜증내다. 화나다, 화내다. 딱 한 획 차이인데 의미는 매우 다릅니다. 전자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고 후자는 그로 인한 행동입니다. 여기서 대개 문제가 되는 건 감정 그 자체보다는 행동이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역린이 있습니다. 저는 신경성이 매우 낮은 편이지만, 제게도 두 가지 급발진 버튼이 존재합니다. 잘못된 UX로 인해(예: 공인인증서) 시간을 낭비했을 때, 그리고 제 시간/노력/성과에 대한 존중을 받지 못할 때입니다.
물론 최선은 짜증날 만한 환경(잘못된 UX)이나 사람(나를 존중하지 않는)을 일찍 감지하고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내맘대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아무리 열심히 피한들 인간인 이상 짜증나는 상황은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어떠한 사건이나 감정이 일어나는 걸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예방보다는 대처에 집중하는 게 더 유리합니다.
달리 말하면, 저는 애초에 화가 덜 나는 사람이 되는 것(감정 통제)보다 남에게 화를 덜 내는 사람이 되는 것(행동 통제)이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저희 부부가 '짜증나도 짜증내지 말기'를 훈련하는 이유입니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만큼 사소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눈에 띄겠지만, 그럼에도 서로에게 짜증내지 않는 성숙한 부모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거든요. 이미 조금은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노력해서 변화하는 엄마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가치있을 거라고 위안해봅니다. 또한 행동과 감정이 결국 연결되어있으니만큼, 더 성숙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감정 또한 더 잘 통제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기도 합니다.
이 훈련은 '화가 나도 꾹 참기'가 아니고, '호구 되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감정을 풀어내되 차분하고 부드럽게 풀어내는 것이고, 내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표현해 상대방의 인식 및 행동 변화가 생길 가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훈련을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저는 부부관계에 유의미한 진전이 있다고 느낍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더 원만하고 생산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참고로 AI가 더 똑똑하게 일하게 하는 데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참고로 비슷한 이야기를 제품 개발과 조직문화 관점에서 썼던 글도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면 시야가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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