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환자가 더 존중받으려면

변화를 만든다는 건 생각만 해도 정말 어렵네요.

오늘 오전 첫째딸 진료를 보러 대학병원에 갔습니다. 8시 반 예약이었고, 엑스레이 찍은 뒤 8시 18분에 정형외과에 도착했는데 실제로 진료는 9시 10분에서야 볼 수 있었어요.

왜 늦어지는지 물으니 의사가 회진 돌다가 지연된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아이가 언제 들어가냐며 계속 묻는 말에 더 대답할 말이 없어서 곤란했습니다. 진료 후 유치원 등원시킨 뒤 출근할 계획이었는데 늦어지니 짜증도 났고요.

제가 더 화가 났던 건 간호사든 의사든 아무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늦어지는 것 자체도, 물어본 뒤에야 이유를 답해주는 것도 짜증났지만 이해를 할 수는 있었는데 사과하지 않는 건 정말 화가 많이 났어요. 간호사 분들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응대해주셨지만 의사는 뭐 아무것도 없더군요. 다음 예약을 잡을 때도, 원래 첫 시간 진료에서 지연이 발생할 수 있는 건지 물어보고 나서야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고요.

좀 흥분한 상태여서 그 자리에서 침착하게 클레임을 걸지는 못했습니다. 보통 병원이 카톡으로 만족도 조사를 하니까 거기에라도 남겨야겠다 싶었는데, 이 병원에서는 만족도 조사가 안 오더군요. 그런데, 만약 클레임을 했더라도 그들이 앞으로는 잘 사과하는 사람이 될까? 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인 판단이 들지 않았습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늦어진 것 자체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늦은 건 아닐테고, 우선순위에 대한 결정을 어떻게든 내렸겠죠. 하지만 50분 넘게 기다린 사람에 대해서는 사과를 분명히 했어야 합니다. 저야 왜 늦어졌는지를 알았다 치더라도 제 뒤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죕니까.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나 있었겠죠.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언제나처럼 '의사들은 원래 그렇다'로 퉁치고 넘어가기에는 참 찝찝하네요. 그래서 이렇게 글이라도 써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이 실질적으로 바뀔까요?

대학병원 의사와 간호사 입장에서, 개별 환자에게 사과하는 행위가 중요한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게 가능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크게 3가지 전략이 생각납니다.

  • 개인 차원: 사과받지 않아도 감정 조절을 잘 하면서, 부드럽지만 단호한 태도로 클레임걸 수 있도록 연습한다 → 이건 해봐야겠다
  • 타인 차원: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들(비단 의사/간호사가 아니라도)을 만났을 때 그들을 슬쩍 인터뷰해서 그 이유를 이해하고(반복되는 사과의 피로감, 책임 소재 시비 등), 사과하는 행위를 통해 감정적으로 작은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유도한다 → 못할 것 같진 않은데 품이 너무 많이 들겠다
  • 시스템 차원: 병원에서 선제적으로 현재 상태를 알리고, 제대로 사과하고, 대처 방안을 알리는 간호사와 의사에게 혜택을 준다 → 병원이 이걸 할 유인이 있을까?

적다 보니 역시 변화를 만든다는 건 정말 어렵네요. 일단 오늘의 생각 발산은 여기까지. 우선 나부터 사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현명하게 클레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