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머릿속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개리 클라인(Gary Klein)은 소방관, 응급실 간호사, 비행기 조종사 등 급박한 현장에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들을 수십년간 연구한 '전문성 전문가'입니다.
클라인은 전문가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와 관찰을 통해, 문제 상황을 만났을 때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모델링하여 인식-행동 촉발 모델(RPD: Reconition-Primed Decision Model)이라고 이름붙였는데요. 1986년 최초 발표된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실제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렇게 행동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도식을 보면 굉장히 그럴싸해요. 우리 자신이 잘 하는 어떤 영역에서 판단, 의사결정, 행동을 어떻게 하게 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모델과 잘 들어맞는 걸 느끼실 겁니다.
RPD Model의 5단계
RPD 모델은 크게 다섯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 전문가가 문제 상황을 경험한다.
- 상황 속의 신호 몇 가지에 집중해 과거 경험과 패턴 매칭해본다.
- 매칭이 잘 되면 행동 전략(무엇을 목표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행동 결과가 어떻게 될지)이 대략 떠오른다. 잘 떠오르지 않으면 추가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신호도 보면서 다시 매칭.
- 떠오른 행동 전략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이걸로 문제 해결이 될까? 안 될 것 같으면 다음 행동 전략으로 넘어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 이건 되겠다 싶은 게 있으면 이행한다. 그러면 상황이 바뀌고, 1로 돌아간다.
이는 우리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에게 뭘 배워야 하는지를 시사해주기도 합니다.
- 전문가가 문제 상황 인식을 위해 어떤 신호들을 어떤 순서로 관찰하나?
- 특정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행동 전략부터 사용하나?
- 다른 게 아니라 그걸 선택한 이유는? 시뮬레이션 어떻게 했지?
코드 리뷰에서 배우기
예를 들어 주니어들이 코드리뷰에서 "변수명 XX가 너무 짧네요. 변수명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긴 게 좋습니다. YY로 바꿀까요?" 같은 코멘트를 받으면 단순히 '넵' 하고 넘어가기 쉬운데요. 여기서도 RPD를 적용하여 질문함으로써 시니어를 괴롭히면 압축성장이 가능합니다.
- 혹시 변수명이 짧아도 괜찮은 상황은 없을까요?
- 그럼 여기서는 변수명이 너무 짧다는 걸 어떻게 판단하셨어요?
- 변수명 XX를 그대로 가져간다면 이후 어떤 문제가 생길 것 같으신가요?
- YY라는 변수명은 어떻게 떠올리셨어요?
- 나중에 YY가 부적절해질 만한 상황이 있다면 뭘까요?
- 그땐 변수명을 어떻게 바꾸실 것 같으세요?
물론 너무 괴롭히면 시니어가 코드리뷰를 안해줄 수도 있으니 적당히 해야겠지만요. 😃
대신, 불평하지 않는 LLM을 괴롭히는 것도 좋습니다. 모든 좋은 질문법과 마찬가지로, LLM에게 RPD식 질문을 하면 굉장히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추가 자료들
- 의심하는 대신 판단 기준을 알려주세요: RPD를 염두에 두며 시니어가 주니어를 성장시키려면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에 대해 쓴 글입니다.
- 어떻게 그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문제를 보자마자 원인을 파악했던 디버깅 사례에서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쓴 글입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CDM(Critical Decision Method) 또한 전문가의 머릿속을 탐구하기 위해 개리 클라인이 개발한 질문법입니다.
- The RPD Model: Criticisms and Confusions: RPD 모델 발표 이후 받은 비판과, RPD에 대한 오해들에 대해 개리 클라인이 2021년에 직접 반박한 글입니다.
- Source of Power: How People Make Decisions: RPD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담긴 개리 클라인의 1999년 책입니다. PDF 버전으로 인터넷에서 보실 수도 있어요.
LLM 활용 프롬프트 예시
RPD를 활용해 LLM에게 질문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는 메시지를 받아서 간단히 구성해봤는데 답변이 제법 괜찮더군요. 구독자 분들께 공유드립니다. ⬇️
물론 현실에서는 시니어가 리뷰해줬을 때 "잠시만요" 하면서 LLM에게 물어보고 질문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장기적으로는 LLM이 생성해주는 질문들을 씨앗 삼아 체화하여 스스로 생성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