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도 필수 다양성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설 연휴. 둘째와 함께 처음으로 멀리 가는 날. 온가족이 본가에 가서 세배 드렸는데 그렇게 유쾌한 나들이는 아니었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챙기느라 분주했고, 도착해서도 아이 신경쓰느라 예민해졌다. 설상가상 원래 이 타이밍에 언급할 계획이 아니었던 문제가 아내 입에서 얼떨결에 튀어나와서, 온전한 계획형이자 안전제일주의인 엄마와 살짝 언성이 높아진 채로 대화를 했다. 왜 가족에게는 상냥하게 대하기가 어려울까? i-message고 뭐고 생각이 잘 안 나고 퉁명스럽게 내뱉게 된다. 집에 돌아와서 전화와 카톡으로 풀긴 했지만 참 쉽지 않았다.
사실 이 시작은 엄마가 아내에게, ‘휘동이가 오늘 얼굴 표정이 밝지 않고 좀 짜증스러운 것 같은데 뭔 일 있냐’고 물어보신 데서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엄마가 자꾸 ‘왜 기분이 나쁘냐’고 하니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 아니 정말 기분이 괜찮았던 게 맞을까? 내가 평소에도 진지하고 심각한 사람인 것도 맞고, 요즘 이것저것 크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해서 + 연휴 직후 마감이 있는 일들이 있어서 머릿속이 복잡해져있던 것도 맞다. 그게 표정으로 드러났던 건 아닐까?
첫째가 요즘 재롱을 많이 피우는데, 그러고는 나와 아내에게 ‘재밌지?’ 하고 자주 물어본다. ‘재밌다’고 대답하면 ‘근데 왜 안 웃어 아빠~’ 라고도 한다. 그러게. 요즘 파안대소했던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감탄했던 일이나 신나고 흥분했던 일은 여럿 기억나는데, 소리내서 웃는 일은 자주 없다. 예전에 즉흥연기 하던 때에는 소리치고 박수치며 웃거나 울었던 적이 많았는데 요즘은 첫째의 재롱을 보면서도 소리를 많이 안 냈던 것 같다. 감정이 많이 무뎌졌을 수도 있고, 머릿속이 꽉 차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필수 다양성의 법칙이 감정에도 적용된다면, 요즘 머리만 엄청 쓰느라 감정의 다양성에 위기가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즉흥연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나? 어쨌든 가족들이 깨달음을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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